[사설] 주최자 없는 행사·매뉴얼 부재가 빚은 이태원 참사
[사설] 주최자 없는 행사·매뉴얼 부재가 빚은 이태원 참사
  • 투데이영광
  • 승인 2022.11.08 09: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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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9일 밤 서울 용산구 이태원 일대에서 핼러윈을 앞두고 발생한 압사 참사는 희생자 가족은 물론 온 국민의 가슴을 옥죄고 있다. 이날 사고는 최소 수 만 명의 인파가 한꺼번에 몰리면서 대규모 압사 참사가 났다. 사망자 대부분은 10~20대인 것으로 파악됐다. 31일 집계된 사망자는 모두 154명으로 부상자를 합하면 사상자가 300명 넘는다. 희생자 중엔 외국인도 30명 가깝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서울 취업에 성공한 사회 초년생, 임용시험에서 해방된 기쁨에 들떴던 수험생, 직장 동료들과 휴일 밤을 보내려던 직장인, 교환학생으로 한국을 찾은 외국인까지 어느 하나 안타깝지 않은 사연이 없다. 순간을 즐기려다 치른 대가치고는 너무나 참혹하다. 희생자들의 명복과 부상자들의 쾌유를 빌며, 유가족들에게 깊은 위로를 전한다.

 대규모 압사 사고는 주로 종교 행사장이나 스포츠 경기장처럼 출입구가 제한된 공간에서 발생한다. 그런데 이번 참사는 서울 한복판 열린 공간에서 발생했다는 점에서 안전대책 부실을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이태원은 10년 전부터 청년층이 선호하면서 해마다 핼러윈 인파가 몰렸다. 특히 이번엔 코로나19로 인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3년 만에 풀린 핼러윈이 되면서 젊은 층이 대거 운집해 10만 명으로 추산된다고 이미 언론에 나왔다. 사고 전날엔 금요일 저녁에도 수많은 인파가 골목마다 몰려 혼잡을 빚었고, 토요일은 더 많은 인파가 예고돼 있었다. 그러나 정부 당국은 만일 발생할지 모를 사고 예방을 위한 관리에 충분히 행정력과 치안력을 기울이지 않았다. 유례없는 대형 압사 사고에 대한 구조 활동 역시 신속히 전방위적으로 이뤄지지 않았고 사망자 유해는 서울과 경기도내 병원 곳곳으로 흩어져 안치되면서 유가족들은 사랑하는 자식을 찾아 통곡하며 헤매는 등 사고 발생 이후 대처와 관리도 허술해 더 큰 고통을 가했다.

 또한 일부 시민의 비인간적이고 몰지각한 행태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 사람의 목숨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가던 길을 멈추고 피땀을 흘린 의인이 있는가 하면 길바닥에 쓰러진 이들의 얼굴에 카메라를 들이대거나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에 맞춰 춤을 추는 일도 벌어졌다고 한다. 누군가의 비극을 돈벌이나 놀이 수단으로 여기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사고 원인 규명 못지않게 자극적인 영상이나 가짜뉴스로 사자의 명예를 훼손하는 행위에 대해서도 엄중한 처벌이 따라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세월호 참사나 성수대교 참사, 대구 지하철 참사 등을 겪으며 그것이 비록 사후약방문이라 할지라도 안전 매뉴얼을 조금씩 다듬어왔다. 그러나 이번처럼 행사의 주체가 아예 없거나 불분명한 상태에서 특정 시간대 특정 장소에 대규모 인파가 몰리는 상황에 대처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사실상 고민이 없었다. 관리 가능한 인파 규모의 측정과 동선 안내, 통행량 분산 방법, 위험한 도로나 계단으로의 진입을 통제하거나 비상로 또는 우회로를 확보하는 법 등에 대한 매뉴얼은 어디에도 없다. 30여 년 전 대형 압사 사고를 겪은 뒤 행정기관과 경찰이 조직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홍콩이나 재난 관리에 독보적인 노하우를 가진 일본의 사례를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다. 사람이 모이는 곳이면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의 사고가 날지 모른다. 차분하고 경건하게 희생자를 추모하는 한편 재난대응방식을 전면 재점검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