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학교폭력은 평생 지울 수 없다”
[사설] “학교폭력은 평생 지울 수 없다”
  • 투데이영광
  • 승인 2021.03.09 09: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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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로배구계에서 시작된 학교폭력논란이 프로야구와 연예계로 일파만파 번지고 있다. 유명 선수와 연예인의 중·고교 시절 학교폭력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글들이 온라인에 연일 쏟아지고 있다. 가해자로 지목받은 이들 중 일부는 사실무근이라며 법적 대응 의사를 밝혔다. 대중에게 비치는 이미지가 직업 활동과 직결되는 연예인에게 학교폭력 가해자 지목은 치명적일 수밖에 없다. 억울한 일이 생겨선 안 된다. 그러나 2018미투운동이 시작될 무렵처럼 학교폭력 피해 주장이 동시다발로 터져 나오는 건 분명 심상치 않은 현상이다. 우리 사회의 어두운 단면을 돌아보는 계기가 돼야 한다.

  연예계의 학교폭력 피해 고발은 전부터 간간이 이어져 왔다. 2019년 오디션 프로그램 출연자와 인기 록밴드 멤버 등은 학교폭력 가해자라는 폭로가 나온 뒤 무대에서 내려가야 했다. 앞서 2011년에는 한 아이돌그룹 남성 멤버의 학교폭력 가해 사실이 드러나 팀이 해체되기까지 했다. 기획사나 방송사는 신인 발굴 단계에서 학창 시절 평판을 조회하는 등 나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하는데, 학교폭력 폭로는 오히려 계속 늘어나고 있다. 특히 피해자는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가해자가 잘 살고 있는 모습을 보면 마음속의 고통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중·고교 시절 학교폭력이 비단 체육계나 연예계만의 문제일 수는 없다. 유명인과 관련돼 있어 논란이 증폭됐을 뿐, 최근에는 SNS,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등에는 일반인의 가해를 폭로하거나 피해 구제를 요청하는 내용도 적잖이 올라오고 있다. 피해 지원 단체에도 10~20년 전 피해에 대한 상담이 현재 학생들의 상담보다 많을 만큼 크게 늘었다고 한다. 피해를 제때 적절한 방식으로 해결하지 못하면서 평생 상처로 남은 이들이 그만큼 많다는 뜻일 것이다.

  정세균 국무총리는 지난 23일 체육계의 학교폭력 근절을 위해 운동선수의 학교폭력 이력을 대표선수 선발 및 대회 출전 자격 기준에 반영하는 등의 대책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학교운동부 폭력은 전체 학교폭력의 단면에 불과하다. 지금 이 순간에도 교실, 운동장, 체육관, 화장실, 기숙사에서 또 다른 학교폭력이 발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더 큰 문제는 아날로그 공간에서의 학교폭력이 스마트폰을 타고 사이버 공간과 융합하면서 영악하게 진화하고 있는 것이다. SNS·채팅방을 통한 험담·따돌림, 온라인상 비하 의도 담긴 글, 신상 유포, 아이디 계정 등 개인정보 유출, 사이버상으로 음란한 대화를 강요하는 성희롱 등 기성세대들은 상상도 못할 사이버 학교폭력유형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있다는 점이다.

  학교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가장 큰 원인은 교육 당국의 미온적인 대응 탓이다. 언론에 보도될 정도로 끔찍한 학교폭력사건이 발생해 국민적 공분을 사게 되면 부랴부랴 예방대책을 내놓는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이다. 시간이 지나 여론이 잠잠해지면 발표한 대책을 형식적으로 시행할 뿐이다. 학교폭력을 막을 최선의 방안은 지근거리에 있는 운동부 지도자, 교사가 정기적인 개인 면담을 통해 학생들의 행동·심리 변화를 관찰하고, 피해 학생이 발견되면 상급기관 보고, 학교폭력대책위 개최 등 정해진 절차대로 조치를 취하는 대응시스템이 쉼 없이 가동하는 일이다. 외부에 알려져 문제가 될까 봐 학교 내에서 은폐하거나 무마하면 피해 학생이 제대로 구제를 받을 수 없을 정도로 일이 더 커질 수 있다. 교육 현장에서 일어나는 일인 만큼 학교 구성원들이 좀 더 관심을 갖고 대처해주길 바란다.

  이번 학교폭력 폭로 사태가 학교폭력은 철없는 시절의 장난이 아니라 피해자에게 평생 고통을 안기는 무서운 범죄라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자라나는 세대에게 비폭력 감수성을 길러 주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