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을 안고 살아가는 이산가족의 비애를 읊은 노래
[기고] 한을 안고 살아가는 이산가족의 비애를 읊은 노래
  • 투데이영광
  • 승인 2021.03.30 10:1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홍농노인대학장
정 병 희

  오랜만에 그 시절, 그 노래, 그 사연에 대해 오늘은 신형원의 서울에서 평양까지를 써보려 한다. 그런데 평소 우리가 마음대로 갈 수도 올 수도 없는 곳이라서 어쩐지 멀게만 느껴지지만 사실 서울에서 광주까지의 거리보다도 100km 넘게 가까운 평양이다. 무엇보다 서울과 평양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그 날은 과연 언제쯤 오려나!

  특히 작사가 조재형이 실제 택시 기사였음을 생각하면 더욱 감흥이 깊어진다. 분단 상황을 묘사한 이 노래는 6·25 전쟁 이후 끝나지 않은 망향과 실향의 슬픔을 얽어 이산가족의 한을 위로한 노래다.

서울에서 평양까지 택시요금 5만원

러시아도 가고 달나라도 가고

못 가는 곳 없는데

광주보다 더 가까운 평양은 왜 못가

우리민족 우리의 땅 평양만 왜 못가

경적을 울리며 서울에서 평양까지

꿈에서라도 신명나게 달려볼란다

(신형원의 서울에서 평양까지가사 일부)

  1995년 신형원이 부른 이 노래는 북, , 장구, 꽹가리 등 사물과 태평소가 어울어지는 전주와 반주가 구성지다. 이 노래를 흥얼거리며 가사처럼 택시를 타고 북쪽으로 향한 적이 있었다. 지금부터 10년 전 20104월 강남터미널에서 택시를 타고 자유로를 달리면 개성과 평양을 안내하는 표지판을 지나 1시간 만에 통일대교에 다다른다. 통일대교 이북은 민간인 출입 통제 구역이니 택시로 갈 수 있는 지역은 딱 거기까지였다. 참고로 당시 그곳까지 택시요금은 56,000원이었는데 돈이나 시간이 얼마나 더 들더라도 개성을 거쳐 평양까지 가보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특히 통일대교는 건설 당시에는 자유대교, 임진대교로 불리다가 이후 통일대교라는 이름으로 개통되었다. 사실 개통 다음 날인 1998616일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회장이 이 다리를 이용해 소 501마리를 몰고 방북한 역사적인 다리이기도 하다. 노래 속에 평양이 광주보다 더 가깝다는 구절이 있는데 서울에서 광주까지는 299km, 서울에서 평양까지는 195km이니 확실히 더 가까운 것이다더욱이 이와 비슷한 시기인 1994년 가수 김해연은 서울 평양 반나절을 불렀다.

평양에 가려면

서울에서 반나절 거리인데

지척에 이 강산은

왜 이다지 멀기만 한지

  이 두 노래는 지금까지 끝나지 않은 6·25 전쟁의 상흔을 모티브로 한다.

  어쩌면 노래 속의 주요 내용인즉 통일이 되면 돈을 못 벌어도 좋으니 이산가족을 찾아서 태우고 북으로 달려가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이 담겨있다. 만약 남으로 돌아올 때 택시를 탈 사람이 없으면 헤어진 그리움에 지쳐 돌아가신 가족들의 해묵은 편지와 원혼이라도 거둬 싣고 오고 싶다는 작사가의 절절한 심경을 모름지기 이해할 것 같다.

  끝으로 이 노래를 부른 신형원은 1958년 강원도 원주 태생으로 1982불씨유리벽으로 데뷔한 가수임을 명기해둔다.